영화 ‘헬프(The Help)’는 1960년대 미국 남부를 배경으로 한 인종차별과 여성의 연대를 다룬 작품이지만, 이 영화는 단순한 인권 영화로 소비되기엔 그 안에 교차된 사회적 억압의 구조가 매우 복합적입니다. 이 글에서는 ‘헬프’를 교차성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다시 바라보며, 인종, 계급, 젠더라는 세 가지 억압 축이 어떻게 인물들의 삶에 겹겹이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보려 합니다.
인종: 흑인 여성의 목소리가 가려지는 구조
영화의 중심에는 흑인 여성들—에이블린과 미니—가 있습니다. 그들은 가사노동자이자 육아 담당자로, 백인 가족의 사적 공간 깊숙이 관여하지만, 사회적으로는 투명한 존재입니다. 이들의 일상은 고통스럽고, 불안정하며, 존엄이 부정되는 상황 속에 놓여 있습니다. 이러한 위치는 단순히 ‘흑인’이라는 이유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여성이고, 노동자이며, 빈곤층입니다. 즉, 그들은 여러 차별이 교차하는 지점에 서 있습니다.
‘헬프’는 이 인종차별을 비교적 부드럽고 감성적인 톤으로 그립니다. 하지만 교차성 페미니즘은 이러한 표현의 방식 자체를 비판적으로 바라봅니다. 흑인 여성의 고통이 백인 관객을 위한 감동 코드로 소비되는 순간, 그들의 현실은 제3자의 시선으로 낭만화될 위험이 있습니다.
실제로 영화의 서사 주체는 스키터라는 백인 여성 기자이며, 에이블린과 미니의 이야기는 그녀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됩니다’. 이 서사는 흑인 여성의 현실을 말하면서도, 그 이야기의 중심 권한은 여전히 백인에게 있는 구조를 반영합니다.
계급: 돌봄노동과 여성의 착취
‘헬프’는 가사노동이란 영역이 얼마나 여성의 노동 착취를 전제로 운영되는지를 보여줍니다. 에이블린과 미니는 자신의 가정과 아이들을 돌볼 시간도 없이, 백인 가정의 자녀를 양육합니다. 그 노동은 정서적 연결을 포함하지만, 정당한 보상 없이 소진됩니다.
돌봄노동은 전통적으로 ‘여성의 일’로 여겨지며, 그에 따라 저임금 또는 무임금의 노동으로 평가받습니다. 그 안에서 백인 여성은 고용자, 흑인 여성은 피고용자로 고정되며, 두 여성은 ‘여성’이라는 공통점을 가졌음에도 계급적 위계에 따라 철저히 분리됩니다.
교차성 페미니즘은 바로 이 지점을 중요하게 봅니다. 여성의 연대는 단일하지 않으며, 계급과 인종에 따라 여성 간에도 권력 차이가 존재함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젠더: 백인 여성의 억압과 그 이면
스키터나 셀리아 같은 백인 여성 역시 당시 사회의 억압을 겪고 있습니다. 결혼하지 않거나, 자녀가 없거나, ‘이상한 여자’라는 이유로 배제당하는 구조 속에서 그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도 경계를 경험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이들이 자신보다 아래 계층의 여성들에게는 또 다른 억압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힐리는 법적으로 흑인 여성의 권리를 제한하려 하고, 셀리아는 미니를 진심으로 대하지만, 여전히 무의식적 권력 우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교차성 페미니즘은 젠더만으로는 여성을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여성 내부에서도 경험은 균질하지 않고, 누구는 억압을 받는 동시에, 또 다른 누군가를 억압하기도 합니다. 헬프 속 백인 여성들은 사회적으로는 피억압자이지만, 동시에 흑인 여성에게는 일상의 통제자가 되기도 합니다.
결론: 교차성 없이 진짜 연대는 어렵다
‘헬프’는 분명 따뜻하고 감동적인 영화입니다. 하지만 지금 다시 본다면, 그 안에 드러나지 않았던 혹은 의도적으로 감추어진 교차된 억압 구조를 읽어야 합니다.
인종, 계급, 젠더는 각기 분리된 차원이 아니라, 동시에 한 인물의 삶을 구성하는 얽히고설킨 조건들입니다. 교차성 페미니즘은 이런 구조적 조건들을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진짜 연대를 위해선 서로의 차이와 권력 관계를 직시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헬프를 교차성의 시선으로 다시 읽는 것은, 영화를 비판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보다 더 깊이 이해하고, 진짜로 함께하기 위한 시작점이 될 수 있습니다.